不孝父母死後悔(불효부모사후회)

부모님의 은혜


나는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오늘까지 후회를 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내일에도 모래도 내가 세상에 살아있는 한 후회를 하며 살 것이다. 생각하지 안해서는 안될 지은 죄가 많기에 잊어서도 안될 부모님의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한시 한 때도 잊을 수 가 없다."자식을 가르치고 먹여살리기 위해서 낮에는 남의집에서 품도 파시고 밤이되면 달그림자 밟으 면서 농삿일을 하시던 부모님이셨는데, 나는 도와드리지 못 하고 친구들과 놀게에만 급급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것 같다. 누님의 말씀으로는 아버지는 때로,점심식사 때 에는 우물에 가셔서 물한 박가지를 떠 드시고는 그 것으로 한끼의 식사 대신했다
는 이야기도 들었다. 물론 가난도 하여서 였겠지만 당신의 한끼의 식사를 걸으시고 대신 자식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이 얼마나 땅을치고 통곡 할 일이던가.그러신 아버지께 미안도 없이. 감사함 도 모르고 주시는 데로 덥석덥석 받아만 먹고 나는 자랐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나는 서러워도 아버지는 속으로 내심 자식들이 잘 잘아주는 것만으로도 아마 기뻐하셨을 것이다. 그것 만으로도 조금은 의안이 되지만 내 가 성장하여 부모님을 모시고 살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부모님께 밥 한술이나마 더 대접하려고 물로 대신 식사를 하기는 그만두고서라도 아버지의 진지에 밥 한 수저 퍼 드리지 않았으니 이얼마나 불효막심한 노릇이었는가. 생각하니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표하기에는 너무나 작아, "하늘보다 더 높은 곳이 있고 바다보다 더 깊은 곳이 있다면 부모님의 은혜를 그 곳에 비하고싶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어느해였던가 기억을 잘 안나지만 어린이날 아침나절에 부모님께서는 한숨을 쉬시면서 무엇이라고 서로 말씀을 나누면서 한탄을 하시는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여쭈어 보지도 못하고 왜 그러시는지 두 눈만 멀뚱멀뚱 거리고 바라보고 있는데 마침 동리 아주머님 한분이 지나가시다가 이상히 여기셨는지 들어오시더니 아침부터 왜그러시냐고 물으시니 부모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오늘이 어린이날인데 남들은 다들 맛있는 것도 사주고 만들어도 주는데 자식하나( 누님들은 모두 출가했음) 있는 것 아무것도 못해주니 그런다고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었다. 이렇듯 부모님께서는 자식 사랑이 하늘과같이 높으신 것을 그때에는 고마운 생각도 감사한 마음도 가지지를 못하고 한 귀로 듣고 흘렸으며 한 눈으로는 바라보고 한 눈으로는 친구들과 노니는 곳으로 버렸으니 말이다,

지금에 와서 그 흘린 부모님의 말씀을 주어본들 어떻게 고마운 마음을 전할 것이며 그 버린 부모님의 모습을 다시 주어온들 자식을 사랑했던 그 깊은 마음을 무슨 재주로 알아볼 수 있단 말인가. 진작에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 그 눈물 그 모습 주어 가저다가 부모님 마음 알아보고 조금이나마 고마움과 감사함에 효를 다함에있어 흉내라도 내볼 것을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께서 언젠가는 돌아가신다는 생각을 못 하고 영원히 함께 삶(살)으시는 줄 알았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부모님은 안이 계신다. 부모님은 기어히 세상을 떠나신것이다. 그렇다고 아버지께 추운 겨울에 돌아가셨다고 묘에 이불을 덮어드리들 따뜻함을 알으실거며. 어머니께서 무더운 여름날에 돌아가셨다고 부채질을 해드린들 시원함을 알으실까?. 생각하면 모두가 다 후회스럽고 죄스러움 뿐이다.

어머님께서는 진달래꽃이 다 지고 아카시아꽃이 피어나 여름이 한창 시작되는 5월(음력 4월)달에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어머님께서 돌아기던 전. 전 해 가을에 내가 감기에 걸려서 기침이 심하니 어머님(76세)께서 는 도슬비를 삶아 그 국물을 먹으면 페에 좋다더라면서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시고 냇가에 가셨다가 그만 반척 깊은 물에 빠지시어 감기와 함께 몸 살을 알으시다가 합병증으로 말미암아 병환이 더하시어 거동은 하시면서도 그렇게 병환으로 돌아가셨는데 덕이(sbs 연속극중 인물)처럼 좋다는 는 약 다 해드리지도 못하고 어머님 병 낳게 해달라고 소원 비는 기도한번 하지 못하였으니 나처럼 불효막심한 자식이 세상 천지에 또 있을까? 그저 그냥 어머님께 한없이 죄송하고 또 죄송하여 때로는 눈물을 짖기도 하면서 한없이. 한없이 어머님 그리운 마음에 말 한마디 전해올릴 길이없어 이런 글로 표현을 하기도 한다.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오늘도 천상에서 사랑의 마음으로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내마음 깊은 곳에 또하나의 어머니
내가 가는 곳곳마다 매일같이 따라와
내 맘속에 드시어
잘되길 빌면서 걱정해 주시는 어머님
문밖의 그림자가 달빛이면은
자장가 불러주시던 어머님 생각에 그리움고
창밖의 그림자가 별빛이면은
애타가 보고싶은 어머님
그래도 이 세상 살만하다고
내게 일어주시고
근심도 괴로움도 마지막 한숨마저도
나 많은 잘살라라고 다 가져가신 어머님
옛날에는 언제나 함께 사시는 줄 알았는 데
오늘은 어디에서 이 불효 자식을
눈에 넣고 살고계시는지요?
어머님
저는 영원한 죄인입니다
이밥에 고기한번 양껏 잡수시지못하시고
한많은 사연만 남기신 채로
쉰둥이 철부지 자식을 세상에 홀로 남겨놓고
세상을 떠나가신 어머님
아직도 나는 어른이 못되고
오늘도 어머님 그리워서 웁니다
어머님. 어머님
지금 이 세상에는 사월의 꽃은 지고
이제는 어머님 집에 할미꽃만 피겠는데
구부러진 허리아파 어찌 살으실래요? !


아버님께서는 추운 겨울 섣달에 돌아가셨는데 젊은 날에 일을 너무 많이 하셔서 그러신지 온 통 육신이 파랗게 멍이드셨으며 몹시도 아프시다고 하셨다. 아마도 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 얻은 대가가 고작 아픔 뿐이었나보다. 그렇게 해서 자식들을 키우셨는데 나는 그렇게도 아파하시는 어버지께 아무런 약도 되어드리지 못하고 아버지는 운명하시고 말았다. 그리 고 눈~이 너무나 많이 오고 너무나 추운지라 장사를 모실일이 큰 걱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님의 임종 옆에서. 이렇게 소원을 빌어보았다.

아버지

*아버지의 일생

저기 저 수만은 곡간이
누구의 곡간인가
한평생ㅡ
섧음으로 길을 닦고
별을 보며 달을 보며
그렇게 걸었어라
팔뻣치면
다을 듯이 다을 듯이
보이지 않음은
누가 먼저
곡간을 차지 했습인가
그렇게
찾아간 보람없이
높은 산
굽은 산
그리도 힘들었어라
디딜곳은 돌부리뿐
앉아쉴곳 없었으니
부엉새 친구 삼아
밤길을 걸으시며
모진 고통 헐벗은 육신
늙음으로 대신하며
그렇게 살아온
아버지의 일생에 남은 것은.!

*운 명

육신 마디, 마디마다 찬바람 스며들어
그리도 아프실 까
젊은 날
자개, 위에 근력을 싫고
남모르는 눈물고생
가슴을 적시며
자식을 키운 대가가 늙음이라
그리도 아프실 까
한평생
밝음을 모르시고
살아온 아버지께
무엇으로 밝음을 채워 드릴까
하늘의 별을 따다
채워 드릴까
해와 달을 따다가
채워 드릴까
가시는 아버지께
무슨 소용 있으리오만
생각하니 모두가 후회의 수난
찬바람아 불지마라
육천마디 아프시다
눈비야 오지 마라
구름아 걷히거라
아버지 가시는 길에 밝음이 보이도록.!


*기도

아버지는 기어이 가시었습니다
어디로 가시는지 말씀도 없이
아버지는 홀로 가시었습니다
부디 아버지 가시는 길에
하얀 비둘기 날아서
생전에 못다 보신 행복을 보시고
아지랑이도 피어나고 봄바람도 불어
꽃도 피고 나비도 춤을 추고
새들도 노래하고 감로주도 있고
언제나 풍성한 열매가 열리는
빨간 나라 파란나라
어우러져 사는
그런 나라로 아버지는 가시어
지개위에 근력대신
마음에 행복을 싫고
해와 달이 눈쌈하며
별을 헤는 그런 나라에서
검은 모자 살며시 눌러쓰고
언제나 아래를 내려다보시며
행복에 겨운 눈물로 손등을 적시며
고이 누울 따뜻한 자리 있어
생전에 못다 이룬
마음에 품은큰뜻
부디 이루시며 누리시며 삶으소서.!

그리고 아버님 묘소에는 그 겨울날씨에도 잔디로 집을 지어드렸다. 그리고 삼우제를 지내고 난 후 잉어의 비늘만큼 크고 반짝이는 눈발이 풀풀 나리고 있었다. 나는 감사의 기도를 눈내리는 곳으로 전해 올렸다. 아버지 가시는 길에 밝음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2001. 6. 8 불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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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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